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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 원제 : 海よりもまだ深く ) / 2016년 개봉작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며칠 째 비가 계속 내리니 집에서 뒹글거리며, 예전 영화를 뒤적이다, 오래 전에 극장에서 재밌게 봤던 잔잔한 영화 한편을 발견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 
우리나라에서는 '태풍이 지나가고'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지만,  일본에서는 '바다보다는 덜 깊은'(海よりもまだ深く) 으로 개봉된 영화입니다.


※ 어떤 영화 프로그램에서는 일본식 제목을 '바다보다 더 깊이'이라고 오역한 것도 봤는데, 제목에 쓰인 'まだ' 는 '아직' 이라는 부사어로 뭔가 충분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단어로 번역 시 '덜' 로 번역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개봉되었는데, 실화를 기반에 둔 '아무도 모른다'나 '걸어도 걸어도'란 영화로 이미 국내에서 꽤 많은 팬 층을 확보한 유명한 감독이라 이 영화를 본 분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늦었지만 리뷰 한번 써 봅니다.
미리 말하겠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가 특별나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냥 소소하게 웃기고, 잔잔하게 '사람이 살아가는 것' 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먼저,  문제가 많은 주인공 '료타'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인생이 코미디처럼 보이는 안일한 삶을 사는 중년의 남성 료타(아베 히로시)는 15년 전에 문학상을 한 번 탄 경력으로 자칭 작가라 말하고 다니는 흥신소 직원입니다. 
그는 경륜에 돈을 탕진하고, 전처 교코(미키 요코)에게 아들의 양육비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주제에 전 처가 새 애인과 데이트하는 것을 염탐하는 찌질한 인간입니다.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철이 없는 사람'으로 통하는 부류죠.
반면 그의 전처 교코는 현실적이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여성입니다.
사회 통념으로 봤을 때, 그녀는 제대로 된 사람이고, 료타는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현실적이고,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철이 든 사람' 혹은 '제대로 된 사람'으로 평가하니까요.
교코는 '료타'를 만나는 날 늦어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그에게 왜 맨날 늦냐며, 양육비는 가져왔냐고 묻습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양육비를 줘야 하는데, 돈을 준비하지 못한 료타는 주말이라 은행문이 닫아 돈을 못 찾았다는 구차한 핑계를 되며, 다음에 꼭 주겠다고 사정합니다.
교코는 '돈 준비하고, 늦지 마!' 라고 경고를 하며, 아들을 만나게 해 줍니다.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두 사람이 왜 이혼했는지가 다 설명이 됩니다.
료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성실함도 없기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감독이 본 영화의 제목을 '바다보다는 덜 깊은'(海よりもまだ深く)이라고 붙인 이유를 료타라는 인물에 맞춰 붙인 것 같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まだ'라는 말은 보통 일본에서 어떤 것이 '충분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일을 완성하지 못 했을 때 많이 사용하는 부사어기 때문에 감독은 료타가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인물이라는 뜻에서 '바다보다는 덜 깊은'(海よりもまだ深く)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식으로 붙인 '태풍이 지나가고'란 제목은 영화에서 태풍이 오는 장면 때문에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해 붙인 것 같은데,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제목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영화의 줄거리는 이미 헤어진 가족이 태풍이 오는 날 요시코(료타의 엄마)의 집에서 하룻밤 지내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한국에서 이 영화에 제목을 '태풍이 지나가고'라고 바꾼 만큼 이 영화에서 태풍은 가족들을 모이게 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아들과 놀이터 미끄럼틀 안 공간으로 들어간 료타는 오랜만에 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는 서로의 꿈(장래 희망)을 묻다 아들이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라고.
료타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합니다. "아빠는 아직(まだ) 되지 못했어." 라고.
이 대사는 확실히 이 영화의 주제를 담은 핵심 대사 입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에서 진짜로 말하고 싶은 핵심이 들어간 주옥같은 대사는 귤나무를 두고 모자가 나눈 대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명대사


료타의 엄마 요시코(키키 키린)는 꽤 재밌고, 귀여운, 정말 사랑스러운 어머니로 보입니다.
그녀는 아파트 베란다에 열매도 열리지 않은 귤나무에게 오랜 세월 물을 줍니다.
그 귤나무는 오래전 아들이 사다 놓은 나무입니다.
그녀는 꽃도 못피고, 열매도 안열리는 그 귤나무에 물을 주며 말합니다.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자란다고, 어쨌든 누구에게는 도움은 되고 있다고 말하며, 꽃도 열매도 안 생기지만, 다 세상에 필요한 거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야말로 이 영화를 빛나게 해주는 명대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에서 원하는 인간상, 통상 착실함을 기준으로 어떤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분류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경제적 능력과 성실함을 기준으로 사람의 질을 나누는 형태로 보여주는데, 실제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높게 평가하며, 수입이 불안하고, 성실함이 떨어지는 사람을 '철이 덜 든 사람' 혹은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분류해 생각합니다. 이는 사람을 기계나 물건처럼 너무 생산성 위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위기에 순간 타인을 돕는 이타적인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별로(거의) 없습니다.
어려움에서 누군가를 돕는 사람은, 실제로 사회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정한 '성실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 속 료타는 사회가 정한 괜찮은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만, 영화 속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세상에 다 필요한 존재' 에 해당하는 사람일 겁니다. 세상에 교코처럼 실리적이고, 착실하기만 한 사람만 가득하다면 창의적인 일은 누가하겠습니까? (참고로 프랑스 사람들은 게으르지만,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습니다.)
영화의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저마다 다 삶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회가 원하는 통상적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다 필요한 존재니까요.

※ 참고로, 주인공의 이름 료타(良多)라는 의미를 풀이하면 '좋은 게 많다.' 라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감독이 문제가 많은 주인공에게 '료타'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에서 보면, 단점이 많아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나름 좋은 점도 많다는 뜻에서 부여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료타'는 감독이 아는 후배의 이름을 갖다 쓴 거라고 알려졌지만, 수많은 이름 중에서 굳이 '료타'라는 이름을 사용한데는 '료타'라는 의미도 한몫 했을 겁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이름에 담긴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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