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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비극의 천재 철학자 니체

니체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철학자다.
물론 그의 철학을 두고, 삐딱하다, 유치하다, 단순하다라고 비방하는 이도 있다는 걸 알지만,
아마 그런 사람들은 순수함이라는 게 없기에, 니체 책을 모조리 읽는다 해도 니체를 이해하지 못해 그를 비방할 수밖에 없을 거다.
니체의 철학은 내면의 순수함이 존재해야만 그를 이해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젊은 사람들은 니체를 좋아해도, 세속적인 것에 찌든 사람들은 니체를 좋아할 수가 없다.
나 역시 니체의 철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확실히, 독선적이고, 삐딱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철학은 냉철한 가운데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고, 강한 어조 밑에 연약하고, 여린 감성이 깔려 있기에 그의 철학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겉과 속이 다 강하다면 그건 로봇이지 사람 같지가 않다.
니체는 강함을 추구하고, 약한 것을 싫어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쫓기 위해서다.
그의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니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니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니체는 순수성이 있는 사람만이 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세속에 지나치게 찌든 사람은 차라리 니체 책을 안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읽어봐야  그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난 요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왜 젊은 날 천재 소리를 듣던 그가 중년의 나이에 정신이 나갔는지 알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차라투스트라는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자신의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갔다. 산 속에서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십 년을 보냈지만, 그는 지치지 않았다.' 

첫 문장부터 그가 얼마나 고독한 인간인지가 나온다.
사실 나도 꽤나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 평생 외로움 같은 걸 못 느끼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외로움에 취약한 존재라는 거다.
니체가 중년에 정신질환을 앓게 된 원인은 아마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고립되어 글을 썼지만, 그는 사람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없애고자 애썼지만, 극복할 수 없는 육체적 나약함 때문에 결국 미쳐버린 것 같다.
그의 생애를 다 알고도 아직도 사람들이 그의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니체라는 인간 자체가 너무나 순수하고, 인간적이기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나약한 존재다.
그런데도 강해지고 싶어 한다.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니체는 그런 인간의 본성에 충실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니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언들을 보라- 
대부분 나약함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말들이다.
난 그의 그런 인간적인 면을 좋아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을 읽다 보면, 그가 '사랑하노라', '사랑한다'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 걸 알 수 있다.
나는 그 글을 읽을면서 그가 얼마나 사랑에 굶주리고, 외로웠는지가 느껴졌다.
정말 누군가 사랑하고 싶은데, 그 까칠한 성격에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니체의 사랑은 대부분 짝사랑으로 끝나기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속에는 사랑의 열정이 넘치는데, 그걸 교류할 상대가 없었으니 얼마나 고독했을까?
어쩜, 그래서 그가 연애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선악을 넘어서'에서  "모든 철학의 발생은 그 근본에 비극을 품고 있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의 해석은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읽는 순간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원래 철학이란 아픔(고통), 슬픔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니체의 철학은 더욱 그렇다.
나약한 육체, 의지할 곳이 없는 고독감, 같은 것들이 그의 철학을 만들었기에 그에게 철학의 발생은 비극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의 말년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돌봄을 받으며, 평온했다고 적혔지만, 니체는 여동생과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고 이미 알려진 상태에서 과연 평온한 생활이 가능했을까는 의문이 든다.
그녀는 미친 오빠를 박물관 투명유리관 안에 가둬 넣고 전시할 정도로 악녀였는데, 과연 그런 여동생의 돌봄을 받는 게 행복했을까? 
니체의 비극은 바로 가족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아, 너무 두서없이 떠들었네^^;;   
며칠째 계속 비가 내려서 그런가 갑자기 센치한 기분에 니체가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조만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다 읽게 되면 그때 제대로 리뷰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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