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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열두 발자국

멀티서퍼 2018. 12. 11. 15:12

구청에서 명사들의 강연을 기획했다.

강연자 명단에 정재승 교수가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전에 JTBC에서 블록코인(비트코인)에 대한 토론을 너무 인상 깊게 본 터라 그의 강의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 토론의 패배자처럼 말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당시 열을 올리던 유시민 보다 전반적인 블록체인과 블록코인의 구조를 차분히 설명하던 그의 말이 더 논리적으로 들렸다. 다만, 두 사람의 논점이 살짝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유시민은 블록체인의 이해 없이 많은 블록코인 중 오직 비트코인만을 이야기 했고, 정재승은 전반적인 블록체인과 블록코인에 대해 이야기했기에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여하튼, 나는 그 토론을 보고, 그가 꽤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의 강연을 보러 갔다.

금요일 저녁이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강당을 채우고 있었다.

청년들이 모였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초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들까지 연령대도 다채로웠다.

아마도 다들 4차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온 것 같은데, 뜻밖에도 그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이었다.

나는 그 주제가 반가웠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주입식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그가 하는 말이 100% 공감이 갔다.

가끔 내가 교육에 관심을 보일 때면, 왜 아이도 없는 사람이 교육에 관심이 많으냐고 묻는 이도 있다. 참 어이가 없는 질문이다.

왜 교육이 아이랑만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할까?

본인들은 교육을 안 받고 자랐나?

교육은 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북한 사회가 폐쇄적인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 가?

외국인들은 북한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오랜 기간 동안 독재가 가능할까?라고 궁금해한다고 한다.

그런데, 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통치자를 숭배하는 교육을 주입받고 자랐기때문이다. 그것을 부인하면 그 사람은 반동이 되고, 사회의 적이 되어 처벌을 받는다.

이처럼 교육은 사람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아주 무서운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난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이 큰 문제라 생각한다.

생각이 필요 없고, 무조건 암기만 시키는 교육은 정해진 답을 써야만, 정답으로 인정되고, 그것은 곧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시킨다.

그런 교육은 창의적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모방자가 창조자보다 인정받고, 성공하는 기형적인 사회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어딘가에 창의적인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들은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이미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었거나, 혹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은 사회분위기에 밀려,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따라 하기에만 급급하지 앞지르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가로 나아가려면, 모방자들 대신 창의적인 사람들을 대우해주는 사회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크리에티브(창조자, 창의적인 사람) 보다 오퍼레이터(기술자, 숙련공)가 대우받는 나라는 후진국이나 개발도산국이지 선진국은 아니다. 크리에티브가 성장하지 못한 나라는 선진국을 모방만 할 뿐, 자기 주도적인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

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독창적이고, 독특한 사람을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벨상은 남과 다른 독창성을 가져야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처럼 모방자가 창의적인 사람보다 대우받는 사회에서 어떻게 세계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아야 받을 수 있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겠는가?

아마 한국인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는 한국사회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 살고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 사회가 독창적인 사람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지 않은 한 이 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나오기 힘들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다.

하지만 정재승 교수 역시 우리 교육이 정해진 정답만을 요구하는 획일적인 교육이라 창의성을 외면하는 교육이라는 말을 했다.

난 그 강의를 듣고 그가 최근 발행한 12발자국이라는 책에 호기심이 생겨 읽었다.

그 책은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은 달랐지만, 괜찮은 책이었다.

책은 강연하듯이 구어체로 써졌는데, 중간중간 ‘(웃음)’ 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어, 편집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글로 ‘(웃음)’ 이라는 글자가 계속 나오는데, 난 이게 어색하다. 나라면 글씨로 ‘(웃음)’이라고 쓰는 대신 웃는 기호☺를 넣었을 것 같은데... 그럼 굳이 괄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암튼 편집은 별로였지만, 내용은 괜찮았다.

책 내용은 수필집처럼 단편적인 내용을 모아 엮은 형태라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대체로 우리의 뇌를 깨워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통념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안 사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디슨이 자신의 성공 비결이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한 말에 대한 실질적 의미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퍼센트만 보고 이 말을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처럼 사용해왔다. 그런데 실제 전체 인터뷰 내용을 보니 사실 이 말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1%의 영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인터뷰 내용으로 99%의 노력이 아닌 1%의 영감이 강조된 말이었다. 그런 말을 우리는 매번 노력을 강조할 때마다 사용했으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다.

그래서 어떤 것에 진짜 실체를 알고 싶다면, 그것을 의심하고, 뒤집어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삐딱한 사람으로 취급하는데, 난 개인적으로 사회 순응자보다는 삐딱한 거처럼 보이는 비판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또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 비판적인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책에서 말한 오리지널스가 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만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기에 그들의 말이 가시처럼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사회에 없어서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럼 의미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비판의 강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통념에 대한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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